영혼을 갉아먹는 사회생활의 민낯

직장인 대다수가 회사와 사회로부터 끊임없는 ‘미세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진단이 나왔다. 남대희 작가가 펴낸 『미세공격 주의보』(김영사)는 직장 내 사회생활이 어떻게 구성원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침식시키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영혼을 바쳐 일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 속에서, 이미 영혼이 탈탈 털린 이들이 어떤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영혼: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

오늘도 우리는 직장이라는 허울 속에서 ‘괜찮은 척’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평온한 조직문화 속에서도 수많은 직장인들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남대희 작가는 이를 ‘영혼이 털리는 경험’이라고 표현하며, 이는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선 아주 미세하고 집요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회의, 작은 실수에 대한 과한 질책, 은근한 눈치 주기 등은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넘기지만, 쌓이고 반복될수록 자신감과 존재감을 급격히 잠식한다.

‘조직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감시 속에서 자아는 점차 흐려지고 사라져간다. 팀워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생각은 묵살되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불합리한 요구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직장인은 무언의 압력에 시달리며, 자기 목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생존'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점차 내면의 자아가 침묵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영혼’을 갉아먹는 시작이다.

실제로 『미세공격 주의보』에서는 다수의 직장인이 하루에도 수차례 사소한 지적과 무시, 비교, 따돌림 등을 경험했다고 밝힌다. 이처럼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상태를 해치는 언행은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 불리우며,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상사나 고객 등 ‘권력 차’가 존재할 경우, 그 영향력은 더욱 지속적이며 깊게 뿌리박히게 된다. 결국, 영혼이 점차 누더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즈음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 호의가 강요로 바뀌는 순간들

‘사회생활 좀 하네요’라는 말은 때로 칭찬처럼 들리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 노동과 억지가 내포돼 있다. 겉으로 웃으며 예의를 갖춰야 하고, 무례한 사람에게도 인내해야 하며,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을 맡아도 거절은커녕 고마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의 강요된 행태다.

남대희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회생활의 탈을 쓴 착취’에 주목한다. 실제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호의는 자주 의무로 바뀌고, 한 번 거절한 뒤부터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기 십상이다. 일정 외 근무나 사적 호출은 점점 일상이 되고, ‘거절하지 못하는 직장문화’는 개인을 질식시킨다. 조직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철저히 억누르는 상황이 반복되면, 이는 결국 자아 소멸로 이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이런 상황이 정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후배는 상사의 무례함조차 배우는 문화로 여기고, 선배는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굳어지고, 자신의 가치나 경계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미세공격 주의보』는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숨겨진 여러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 허상을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사: 시스템 자체가 인간을 갈아넣는 구조

사람들은 종종 ‘좋은 회사’를 찾지만, 정작 문제는 회사의 시스템 자체에 있는 경우가 많다. 『미세공격 주의보』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회사가 사람의 ‘영혼’을 점점 갈아넣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업무량은 줄지 않는데 책임은 늘어나고, 성과로 평가받되 인간적인 사김은 요구된다. 직장인은 결국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탈진하고 만다.

특히 문제는 회사의 인사 시스템 및 조직문화다. 합리적이지 않은 평가 기준, 클리어하지 않은 소통구조, 그리고 감정표현에 인색한 상사 문화를 통해 직장인들은 끊임없는 불확실성과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이런 무형의 압박은 ‘미세공격’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교묘하게 점철되며,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공격하거나, ‘욕심이 없다’며 발전 가능성을 부정하는 식의 말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즉,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다. 한국 사회 다수의 기업은 ‘성과 중심’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고 효율만을 추구한다. 이 시스템에서는 진정성이나 인격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결과와 순응만이 진리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 안에서 ‘영혼이 털리지 않은 사람’은 되려 이상하게 보일 만큼, 회사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사람의 내면을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시키며 파괴하고 있음은 놀라운 사실이다.

남대희 작가는 “회사라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비인격적이며, 인간을 기계적으로 대하게 설계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직언한다. 이런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기계발’을 멈추고, 이 시스템 자체의 전복 혹은 대안적 사고를 모색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결론

『미세공격 주의보』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사회생활의 민낯을 깔끔히 벗겨낸다. 영혼이 털리는 듯한 느낌, 억지로 웃으며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회사의 구조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이 책은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제공하며, 수많은 직장인이 겪는 심리적 침식 현상을 재조명한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사회와 조직이 함께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직장 내 미세공격에 민감해지고, 더 나은 소통과 이해를 토대로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